밥상 위에 담긴 희로애락, 당연함 속에 담긴 ‘넘버원’ [씨네:리포트]


*해당 리뷰 기사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TV리포트=강지호 기자] 당연하게 영원할 것 같았던 엄마의 시간에게. 유한한 시간 속 소중함의 의미를 묻는 영화 ‘넘버원(김태용 감독·㈜바이포엠스튜디오)’이다.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원’은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넘버원’은 이미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던 이들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영화다. 김태용 감독과 최우식은 2014년 영화 ‘거인’ 이후 약 12년 만에 재회했고, 최우식과 장혜진은 영화 ‘기생충’ 이후 다시 한번 모자(母子) 역할로 7년 만에 호흡을 맞추게 됐다. 새롭게 합류한 공승연도 끈끈한 제작진과 출연진의 호흡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 소중함을 곱씹기보다 도망치기 바빴던 모든 이들에게…밥에 담긴 엄마의 사랑

막이 오르자마자 ‘엄마’는 밥을 챙기기 바쁘다. 한 입이라도 더 먹고 가라는 엄마 은실의 성화 속에서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흘러간다.

그리고 비극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평범했던 하루는 엉망이 되고 소중한 것을 잃은 가족은 무너진다. 형을 잃은 하민은 상실의 절망감 속에서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하지만 은실은 밥을 한다. ‘밥이 넘어가냐’는 하민의 외침에도 은실은 하민에게 밥을 먹이고, 밥을 먹는다. 밥은 은실에게 삶이고, 생존이다.

동시에 은실의 밥은 사랑을 의미한다. 숫자를 보고, 숫자의 의미를 알게 된 하민이 은실의 밥을 먹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도, 그리고 뒤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은실은 하민에게 밥을 해주고, 밥을 먹이고, 밥을 먹었는지 묻는다. 하민은 지키기 위해 도망치기 바빴지만, 은실은 늘 같은 자리에서 아들이 먹어주길 바라며 밥을 한다.

영화 속 ‘밥’은 삶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쁠 때도, 화가 날 때도, 슬플 때도, 즐거울 때도 늘 밥을 먹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밥은 당연하다. 뻔할 수 있는 ‘엄마의 집밥’이라는 소재는 보편적인 감정의 공유가 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하민이 떠난 자리는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집에 홀로 있는 은실의 모습은 아마 많은 자식의 아픔이 될 것 같다.

영화 내내 하민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상황을 피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랬기에 당연함 속에 담긴 소중함을 곱씹기보다는 도망치기를 택한다. 하지만 ‘넘버원’은 꽤나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하민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만들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넘버원’이 표현한 밥상 속 희로애락은, 뻔하지만 따뜻하게 관객의 인생 속 ‘넘버원’의 의미를 묻는다. 나의 ‘넘버원’이었고, 누군가의 ‘넘버원’이었던 관계의 소중함에 질문을 던진다.

▲ ‘넘버원’이 전하는 숫자의 의미…부모님의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식탁 위 음식이 짜기만 하면 맛이 없다. 김태용 감독의 ‘넘버원’도 짜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감독의 대본과 감칠맛을 첨가해 주는 부산 사투리, 장혜진과 최우식의 모자 호흡과 공승연의 사랑스러움은 극 중 유머로, 현실 케미로, 새콤함이나 달달함으로 짠맛을 중화한다.

그래서 ‘넘버원’은 단순히 슬프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땅에 발을 붙인 우리네 인생 같은 영화가 됐다. 명절에 보기 딱 좋은 가족 영화의 따뜻함이다.

물론 전개가 평이한 감은 있다. 유머로 승화하기에는 비극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서사가 조금 버겁기도 하고, 성향에 따라 캐릭터들의 행동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영화적 서사에 대한 허용 없이 ‘넘버원’을 감상한다면 하민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3인칭 시점을 내려놓고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내려온다면 훨씬 더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스크린을 통해 전해진다. 숫자가 보인다는 약간의 판타지적인 설정을 제외하고 본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미루는 ‘나’와 하민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숫자가 보인다는 설정을 시간의 한계를 상징하는 비유로 받아들이면 작품의 의도는 훨씬 명확해진다. 우리의 숫자는 줄고 있고, 부모님의 숫자는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넘버원’은 빠르고 자극적인 서사나 참신하고 본 적 없는 소재는 아닐지 몰라도 일상과 온기, 전하는 메시지가 가진 힘이 큰 영화다. 설 연휴 가족과 함께 찾기에 딱 좋은 영화 ‘넘버원’은 지금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월 11일 개봉. 러닝타임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강지호 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 영화 ‘넘버원’